셋째 날

두달 전에 예약해 놓은 Denali 국립공원의 shuttle bus를 타기 위해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고 어제처럼 냉장고 가득 들어있는 아침식사를 먹고 남은 것을 배낭에 들고 호숫가 숙소를 떠났다. 이 숙소는 이박삼일 묵으면서 주인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떠날 때는 체크아웃 하는 절차 없이 문에 열쇠를 꽂아놓고 떠나면 되는 것이다. 자기 집처럼 지내다가 가라는 이 숙소만의 독특한 방침이었다.
디날리 국립공원은 입구 몇 마일까지만 일반차가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은 버스를 타야 한다. 차가 많이 다니면 공기도 오염되고 자연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복 여덟시간 정도 걸리는 Fish Creek까지의 코스를 예약해 두었는데 디날리 안의 버스는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탈 수 있다. 트레일을 하고 싶으면 맘 내키는 곳에 내려서 다니다가 다음에 나타나는 버스를 타면 되는 것이다.
우리 버스의 기사는 젊은 여자였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이 디날리의 모습을 닮아 그 일부인 양 아름다워 보였다. 저 사람은 번잡한 도시에 싫증이 나서 이곳으로 훌쩍 떠나 왔을거야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 기사는 트레일 루트를 따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그러면 사람들이 그곳을 가게 되고 그러면 길이 생겨서 풀들이 죽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그 넓은 디날리 안에는 버스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길만이 한 줄기 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느 국립공원에서나 흔히 보이던 피크닉 테이블 하나 없었고 음식을 파는 곳도 물론 없었다. 디날리 홈페이지에는 반드시 점심도시락과 물을 싸 오라는 안내가 있었다. 기사는 먹을 것은 가급적 차 안에서 먹고 밖에서 먹게 되면 음식을 절대 흘리지 말고 흘리면 반드시 줏으라고 했다. 곰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인간이 먹을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의 곰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국립공원에서 곰만큼이나 미련한 나도 어떻게 여는지 몰라 항상 헤매게 하던 복잡한 구조의 쓰레기통들과 곰에게 습격당한 자동차 사진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디날리로 들어서면서 정말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산양은 저렇게 가파른 곳에 몰려 살고 곰과 늑대도 같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알았고 무스며 순록, 타미간 등등을 보았다. 기후도 맞지 않는 먼 이국으로 붙잡혀 와서 병들어 가는 동물원 안 동물들의 초점 없는 눈초리를 대할 때 느끼던 부끄러움이나 서글픔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건강하게 사는 동물들을 우리가 손님이 되어 찾아가서 본다는 것은 큰 감동이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산들 너머로 문득 나타난 하얀 봉우리! 기사가 그 산이 바로 멕킨리 산이라고 하였다. 북미대륙의 최고봉, 우리나라의 고상돈이 그곳에 묻혔다고 했던가. 수많은 산들 뒤에 하얀 만년설에 쌓여 있는 멕켄리 산은 산신령의 도포자락처럼 신령스러웠다.
버스에서 돌아온 우리는 공원 입구에 있는 알라스카 허스키의 개썰매 시범을 보고 나서 2시간을 남으로 달려 Talkeetna에 갔다. 그곳에 예약해 둔 곳은 Talkeetna Chalet Bed & Breakfast라는 민박집이었다. 외국에서 민박도 한 번 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인터넷을 헤매던 중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호평을 읽고 예약을 한 곳이었다. 높은 나무숲에 둘러싸인 언덕위의 이 집도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정말 동화속 집처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며 모든 것이 너무 예쁘고 앙증맞으면서 여기가 알래스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는 것들이었다. 아침 먹을 곳이라며 소개해 주는 주인을 따라 올라간 이층 거실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가 놓인 원목 식탁에 예쁜 장식들로 가득하였다. 애들은 이렇게 예쁜 집에 하루 밖에 못 있느냐며 아쉬워 했다. 그 날 밤도 우린 예쁜 꿈을 꾸며 곤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