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마 와   달 팽 이

 

‘졸리의 Beauty&;Life'를 시작하면서 ’Life'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다.

컬럼의 성격상 ‘아름다움’과 ‘인생’을 연결시켜야겠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아닐는지...

큰 고민 않고 그냥 내가 사는 ‘인생’이야기, 우리가 사는 ‘인생’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신발에 뭐가 들어가는 바람에 맨살로 밟아 본 잔디의 촉감이 아름다웠고, 어느 날, 오른 손을 다쳐 왼손으로 일주일을 살아 보니 모르고 살던 왼손의 유용함과 잊고 살던 오른 손의 아름다움을 절감했듯....

우리가 사는 이 생은....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하려 하니 머리에 떠오르는 영상이 줄을 잇지만 그 선두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엄마’가 보인다.

 

                                               * * * * *

 

우리 엄마는 경상남도 어디 촌에서 20년을 살았다. 여자가 고등학교를 가면 큰 일나는 줄 아셨던 조선시대 말기 태생 외할머니-어렸을 때, 주민등록증을 본 적 있는데, 앞의 숫자가 ‘87’로 시작되었다. 1887년 '구한말'생이라는 말씀-때문에 중학교를 다니다 그나마 중퇴했다. 시집을 도시로 와서 30대 중반부터는 서울에 살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직 어쩔 수 없는 ‘촌 아줌마(아니, 이젠 할머니)’다. 환갑을 넘겼어도 지금까지 백화점에서 빤쓰 한 장 사 입은 적이 없으니까. 백화점에 가긴 간다. 구경하러. 백화점 옷들에 붙은 가격표를 잘못 읽어 ‘0’을 하나 떼놓고도 우리 엄마는 살엄두를 못 낸다.

 

그래도 피부는 타고난 우리 엄마. 화장품 방문 판매 아줌마가 놓고 가는 샘플이나 동네 화장품 가게 문 앞에서 ‘떨이’로 묶어파는 ‘아무레’, ‘주단확’...이런 짝퉁 브랜드의 스킨, 로션을 발라도 뾰루지 하나 안 생기고 윤기가 난다. 그런데 결혼 전, 회사에 다니면서 아침에 밥그릇 들고 ‘한 숟갈 만 더’ 외치며 날 쫓아 나오는 엄마 얼굴에서 낯선 부스럼을 보았다.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와(왜..의 경상도 사투리)?

-그게 뭐야?

-아...이거? 어제 화장을 안 지우고 잤더니 그런가배.

-싸구려 화장품 좀 그만 발러. 내가 사 줄게.

-만원도 넘는 화장품을 와 자꾸 싸구려라 카노.

 

그 날 퇴근해서 외국 여행 갔던 친구가 사다 준, 포장 비닐도 안 뜯은 ‘Dalphin' 클렌징 크림을 엄마에게 주었다. 어디서 얻은 샘플을 써봤는데 아주 좋아서 친구에게 사 달라고 했었다.

 

-이게 뭐꼬?

-클렌징 크림이야. 화장 지우는 거.

-아직 있는데 뭐 하러...

-제대로 된 걸로 지워.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단 거 몰라?

-테레비 보니까 그카대(그러대).

-그러니까 잘 지워. 얼굴에 그런 거 안 나게.

-오야(오냐...의 우리 엄마식 말투). 그란데 이거 얼마줬노?

-건 알아 뭐해?

-비싸재?

-안 비싸.

-그란데...이거 뭐라꼬 써 있는 기가?

-달팡.

-달...팽....?

-달팡.

-하모, 달빵.

 

그러고서 나는 지방으로 취재를 위해 출장을 갔다. 3일 뒤, 집으로 돌아오니...우리 엄마 얼굴이 불그레죽죽 난리도 아니었다. 나하고 얼굴을 안 마주치려고 시선을 피하며 ‘밥 묵꼬 왔나?’ 하는 걸 내가 잡아 세웠다.

 

-얼굴이 왜 이래?

-얼굴이 와?

-내가 준 걸로 안 지웠지?

-지웠다, 가시내야(우리 엄마는 당황하거나 무안하거나 또는 반대로 기분 좋으면 꼭 날더러 ‘가시내’라 한다).

-근데 왜 이래?

-뭐 잘못 묵었나....나도 몰따(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말싸움에서 나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유 없이 앓아누웠을 때도 병원 안 가면 의사 왕진 오라 할 거라며 내가 전화수화기 들자 곗돈 300만원 떼였다고 실토했으니까. 말할 때까지 저녁도 안 먹고, 아침도 안 먹고, 회사 가서 점심도 안 먹겠다는 내 고집에 엄마는 두 손 들고 실토했더랬다.

 

-니가 사 준 거...암만캐도 비싼 거지 싶어갖고 내 화장품 가게 들고 가서 물어봤다 아이가. 하이고, 세상에, 그랬뜨마는 그거 하나에 10만원도 더 하는 거라카대? 그 비싼 걸 우째 바르고 바로 씻어 뿌리노? 암캐도(아무래도) 그리 비싼 긴데 발라두고 있으면 좋지 않겠나 싶드마는...그래, 며칠 영양구리무처럼 세수하고 바르고 안 잤나. 그랬더니 이래 돼뿟따.

 

그 때 일이 벌써 15년도 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화장품을 살 때 될수록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엄마한테 드렸다. 절대로 다른 사람 주지 말 것. 절대로 적어준 대로 그대로 지켜서 사용할 것. 절대로 되팔지 말 것. 등등 내 말을 지키지 않으면 ‘무서운’ 꼴 보게 될 거라 ‘위협’하는 걸 잊지 않았다-주로 단식투쟁 같은 게 잘 통한다. 우리 엄마한테는-. 미국에 온 지금은 해외 비자 카드로 백화점에서 주문해 엄마 집으로 배송시킨다. 배송시킬 때마다 득달같이 전화가 온다.

 

-죽을 때까지 써도 이거 다 몬 쓰고 죽는다, 이 가시내야(무안한 걸까, 당황한 걸까, 아니면 기분 좋은 걸까)...뭐할라꼬 화장품은 이리 자꾸 보내쌌노...

 

나는 그래도 못 들은 척 한다. 그래도 내 가슴에 박힌 15여 년 전, 우리 엄마 얼굴에 올랐던 그 부스럼을 빼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니...빼낼 수는 있을까...이런다고 빼낼 수 있을까...

 

-엄마. 이번에는 옛날에 엄마 얼굴에 그 난리쳤던 그거 사다 보내줄까?

-하이고, 싫다. 나는 그거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근질거린다.

-그거 이름이나 기억할랑가?

-야는...내를 무신 바보로 안다 아이가.

-뭔데?

-그 쉬븐(쉬운) 이름도 모를까봐?! 달팽이 아이가, 달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