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메이크업

 

은영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

언제나 밝은 목소리, 웃는 목소리, 환한 목소리 때문에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친구였다. 학교 다닐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아기 엄마가 되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우한 이후로 꽤 자주 만났다.

은영이는 평소에도 늘 밝았지만 특히 전화받을 때 목소리가 이뻤다.

 “여보세요?”

 구슬이 은쟁반에 굴러가는 정도는 아니어도-나는 언젠가는 꼭 한 번 구슬을 은쟁반에 굴려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소리가 나길래.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면서 정말 무지하게 많이 쓰고 있는 이상한 표현-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개운해지는 마력을 가진 ‘여보세요’.

 그래서 물었다.

 

 “넌 평소보다 전화받을 때 목소리가 더 이쁘더라?”

 “그거야 일부러 만드니까 그렇지.”

 “일부러 만들어? 뭘? 목소리를?”

 “그럼, 누가 전화했는지도 모르잖아-caller ID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참 오래전 이야기-. 남편 회사 동료일수도 있고, 상사일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 있잖아….”

그녀의 말인즉, 얼굴을 보지 못하니 ‘목소리’하나로 모든 걸 평가받아야하는 낯선 사람들을 의식한 ‘위장’이었다는 이야기다.

 흠….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다.

 

 “여보세요?”

 “아, 김여사! 아직도 집에 있어? 뭐하고 있어, 여태?”

 “아, 예….어머니는 나가셨는데요.”

 “예? 아이고, 따님이셨구나. 미안해요. 어머니하고 목소리가 똑같네.”

 

도대체 이랬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나는 참 불효녀다. 외모가, 목소리가 우리 엄마와 판에 박은 듯 똑같다고 하면 왜 그리 ‘칭찬’의 반대말로 들리는지…언니, 동생 사이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30년이나 나이차가 나는 우리 엄마와 내 목소리를 우째 이리도 분간을 못하는지…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목소리 색이 아니라 목소리 톤이었다는 걸. 쉽게 말해서…말투.

 

은영이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나는 ‘목소리’에도 메이크업을 하려 많은 노력을 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위장한 ‘여보세요’는 인간관계에, 사회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여보세요’에서 평상시 말할 때도 확대시켜나갔다. 완벽하게는 안 되었지만 신경을 쓴다는 건 분명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그렇게 십여년이 지난 지금, 내 목소리, 말투자체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거, 좀 상냥하게 말하면 누가 잡아먹어?”

“냅뚸유, 생긴 대로 살게.”

 

이럴 게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만 보지 않는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다. 얼굴로 우리를 평가하는 결과보다 목소리로 우리를 평가하는 결과가 그 진실성에 있어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일부러 목소리까지 위장해가며 내숭을 떨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얼굴 메이크업도 일종의 ‘위장’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기 ‘위장’은 욕먹을 일이 결코 아니다.

 

얼굴 메이크업이 끝나면 목소리에도 메이크업을 하자. 화사하고 밝고 고운 색을 입혀주자.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면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원래 메이크업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위한 게 아니던가….

 

*다음 칼럼 내용은 '이러다가 대머리 되는 거아냐?(헤어관리)'를 다루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