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물기가 다 빠져버린 나무등걸같이 쇠약해져있습니다.

다섯 번의 항암치료가 친구의 몸무게를 20키로나 빠지게 했네요. 살이 빠지면서 근육도 같이 빠졌나 봐요. 걷는 일을 힘들어 합니다. 잘 먹지도 못합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대사처럼 온 집안 식구가 달려들어 ‘왜 먹지를 못하니? 좀 먹어라, 제발!‘을 외쳐대지만…

그 와중에서도 냉증을 낫게하겠다고 동네 유명한 한의원에 나를 끌고 가는 친구. 이틀에 걸쳐 침을 맞아봤지만 친구의 정성에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나의 몸은 얼음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시리고 아픕니다.

독자님들의 따뜻한 위로가 듬뿍 담긴 댓글들은 하나하나 정독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일일이 답을 해드려야하는데 경향이 없는 상황이라. 죄송하기 짝이 없네요.

지난번 글에 썼던 그 ‘불륜커플’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글을 쓴 후 목요일 이른 아침. 강아지들과 그 공원에 갔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남자가 트럭에 기대어 길 쪽으로 눈을 고정한 채 여자 차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강아지들을 이끌고 일부러 남자 곁을 바짝 지나치며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네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다’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주면서.

공원을 가로질러 큰 길로 나갔는데 흰색 트럭이 바쁘게 쌩, 나를 지나쳐 달려갑니다. 구형 포드. 불륜남자의 트럭입니다. 무슨 일?! 산책을 좀 일찍 마치고 돌아올 때보니 주차장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둘은 항상 약조했던대로 목요일날 만나기로 한 것같은데 여자가 사정상 나오지를 못한 것 같아요. 남자는 여자의 통보에 아쉬움의 발길을 돌린 것같고.

그런데요. 그 뒤로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두 달이 넘도록 월, 목, 일 주일에 두 번 빠지지 않고 밀회를 즐기던 커플인데 무슨 일이 생긴 것같아요. 공원 주차장은 다시 예전처럼 차 한 대 없이 늘 텅 비어 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가면서 나는 상상합니다. 여자의 남편한테 발각이 난 것일까. 아니면 여자가 급히 오다가 차사고가 난 것일까. 그래서 지금껏 병원에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둘의 데이트 모습이 지인의 눈에 뜨여 귀뜸을 받은 것일까…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는 독자가 있습니다. 우리집을 찾아 온지는 몇 년 되었지만 최근에 부쩍 가까워진 독자입니다. 그녀에게 불륜커플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외모가 무너질대로 무너진 중년남자 여자의 정말 가관이었던 애정행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더니 독자가 말합니다.

“계숙언니는(처음의 ’작가님’에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천상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야요. 그렇게 재밌는 일을 어찌 글로 안 옮기시려 하오?!”

‘이계숙을 저격했던 속풀이방’ 글에 누가 댓글로 썼더군요. 이계숙은 글 소재로 쓰기 위해 모든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아니요. 틀린 말입니다. 일부러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해 본 적 없어요. 몇 번 언급했지만 글의 소재가 고갈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도 나의 수첩에는 글로 풀어놓기 위해 적어놓은 간단한 메모들이 빽빽합니다. 내겐 그냥 무심히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되니까요. 애써 사물을 관찰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 버릇이 절필을 선언한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네요.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의 여정. 한국에 도착한 후에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일들이 모두모두 머릿속에 차곡차곡 글 소재로 저장되는 걸 느낍니다. 그러다가 나는 화들짝 머리를 흔들면서 되내입니다. 아, 이제 이럴 필요 없지. 뭐하러 이러나…

한국의 하늘은 도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회색빛입니다. 언제 햇빛이 나려나.

- 우리 강아지 ‘빙고’는 매일 내 실내화 위에서 저러고 있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짠합니다. 한국에도 짠한 일 천지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짠한 일로 점철되어 있는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