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결혼한 후 금방 집을 샀습니다. 신축의 이층집.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결혼선물로 돈을 줬거든요. 당시로는 꽤 큰 액수. 이재(理財)에 밝지 못한 나는 맘 놓고 쇼핑할 생각에 마냥 신바람이 났지요. 식탁도 바꾸고 소파도 바꾸어야지. 이참에 화장대도 바꿀까…

그런데 어느날 저녁, 남편이 혼자 산책을 나가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집을 사겠다고 계약금을 걸고 왔답니다. 나랑 아무 의논도 없이. 나는 경악할밖에.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방 두개, 화장실 두 개의 고급 아파트. 둘이 살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그래서 한 번도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든요. 그 아파트 단지 앞에 주택들이 대거 지어지고 있었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목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집부터 사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답니다.

어쨌든 몇 개월 후 집이 완성되어 이사를 갔어요. 방 세개, 화장실 세 개의 넓디 넓은 곳에 새 가구와 새 전자제품을 채워 넣고 인테리어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런데 집 잘못 샀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어요. 바로 뒷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뒷뜰은 꽤 높은 언덕을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 언덕 위에 바로 이층집이 있었어요. 우리집도 이층집이긴 했지만 언덕 위이니 우리집이 직통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부엌에서 뭘 하는지 침실에서 뭘 하는지 목욕탕에서 뭘 하는지 훤히 보이는 겁니다. 하다못해 지인들 불러다 바베큐를 한 번 하려해도 어떤 고기를 굽는지 뒷집에서 알 정도입니다. 속옷이라도 갈아입으려면 앞뒤 창문을 이리저리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커튼을 쳐놓고 살아야 했어요. 내 집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거기까지는 괜찮아요. 뒷집 뒷뜰에 예닐곱마리의 개를 풀어놓고 키웠는데 이 개들이 매일 짖어대는데 사람이 돌 지경입니다. 몇 번 시정을 요구했지만 문신 투성이의 주인 남자는 알겠다고만 하고 도루묵.

그리고 이층집은 보통 부지런해야 되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해야 해요. 커피 물이나 라면 물을 불에 올려놓고 이층에 잠깐 올라갔다가 깜박하고는 주전자와 남비를 태우기도 수차례. 그렇게 되니까 첫 집을 샀다는 기쁨도 잠시, 그 집이 너무너무 싫은 겁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싼 값에 처분하고 그 집을 나왔어요. 가구까지 싹 끼워서 팔아치우고. 1년 반만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사간 집 역시 조성 중에 있는 단지의 새 주택, 첫 번째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물론 모델 하우스만 보고 선택한 집이었지요. 계약금을 걸고 집이 완공되길 기다리는데 참 이상했습니다. 문 손잡이, 화장실 변기, 하다못해 부엌 케비넷 갯수와 수도꼭지까지 다 선택사항인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했어요. 왜냐면 주택회사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제품들은 정말로정말로 싸구려도 그런 싸구려가 없었기에.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완전히 ‘하꼬방’수준이 될 판이어요. 집값보다 옵션에 들인 돈이 거의 같은 지경이라면 말 다했지요. 이 인간들은 그냥 벽하고 기둥만 세워놓고는 마감재나 재료 업그레이드를 중심으로 이익을 남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업그레이드에 돈을 많이 들였는데도 이사를 해놓고 보니 완전히 깡통을 펴서 만든 것같이 날림입니다. 화장실에 환풍기도 없고 부엌 스토브 위에 팬도 없어요. 창문은 흉내만 냈을 정도로 작을 뿐만 아니라 홀겹입니다. 온갖 소음이 다 들리고 단열이 안 되어 춥고 덥습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어째요. 잘 알아보지도 않고 모델 하우스에 혹해서 덜컥 덤벼든 우리의 성급함과(첫 번째 집이 예상외로 빨리 팔려서)불운을 탓할밖에.

이사간 날부터 그 집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나는 외출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인데 집에 있는 일이 참 불행했습니다. 집안을 오며가며 눈에 뜨이는 조악하고 허접한 마감재나 자재들을 보면 열통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요. 남편 역시 마찬가지. 앞으로 누가 그 회사 주택을 산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린다고 우리는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딱 2년 살고 그 집을 팔았습니다. 집 자체는 싸구려지만 언뜻 보면 멋있어요. 인테리어를 잘 해놔서. 서로 사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그래서 웃돈을 얹어서 팔 수 있었어요. 첫 번째 집처럼 가구도 같이, 내가 인테리어 해놓은대로 몽땅.

세 번째 집. 지금 20년 넘게 살고 있는 현재의 집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기뻤던 때가 이 집을 샀을 때. 위치, 넓이, 방 갯수, 구조 등이 내가 꿈꾸어 왔던 집이거든요. ‘드림 홈’은 세 번째에 만난다더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바닥과 부엌 카운터톱, 그리고 목욕탕 유리를 새로 갈았고 최근에 물탱크와 히팅 에어컨디션 시스템을 교체했으니 앞으로 20년은 끄떡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구입가격보다 배 이상 값이 오르기도 했고 또 그만큼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었지만 우리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왜냐면 집값 뛰었다고 기뻐하고 하락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이 집을 팔 계획이 있지 않기에. 자식없는 우리는 앞으로 나이가 더 들면 ‘리버스 모기지‘를 해서 돈을 좀 꺼내 쓰고 이 집에서 여생을 마치려고 합니다.

집.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을 위해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곳.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집 내 집뿐이네’라는 노래가사가 아니더라도 집이란 가족과 단란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지요. 보편적으로 우리 모두가 집을 원하는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런데 집을 위의 이유와 목적이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디다.

삼성병원에서 친구 부부를 만나서 같이 간 곳은 내 이종사촌 여동생집이었습니다. 몇 십년만에 처음 보는 동생입니다. 서울을 비롯해 수원, 김포, 성남 등지로 이사를 다니다가 몇 년전에 용인에 넓은 아파트를 샀다고 합니다. 조성된지 몇 년 안 된 신도시. 허허 벌판에 고층 아파트 수십동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습니다. 미국에선 구경도 못 할 으리으리한 상가와 고급 편의시설이 그 아파트 단지를 에워쌓듯 둘러 서 있습니다.

나는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60평 아파트라니 얼마나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며놓았을까. 그러나 집안에 발을 들여놓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소박하고 검소해 보여서요. 아니, 소박과 검소를 넘어 초라하고 궁핍합니다. 거실에는 텔레비젼, 소파와 티 테이블이 전부입니다. 식탁도 없고(시골에서나 볼 듯한 네 다리 접히는 상이 부엌에 있어요)벽에 그림 한 점, 사진 한 장 보이지 않습니다. 임시로 사는 집 같이 썰렁하고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워요. 나의 뜨악한 얼굴을 본 동생이 마구 웃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한 집에서 3년 이상을 살아본 적이 없어요. 몇 년 살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고 또 돈이 될 만한 곳으로 옮겨다녀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사 다닐 때 힘드니까 최소한의 살림살이만으로 생활해요. 가구는 옮기다니면서 흠집나기에 모두 중고점에 구입했고요. 몇 년만 이런 식으로 살면 몇 억이 그냥 떨어지니까. 언니도 돈 있으면 한국에다 투자해요. 아파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야...”

빈 주먹으로 결혼해서 돈을 억수로 벌었다고(이제 쉰밖에 안 된 나이에 아파트가 세 채에 상가건물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니 모두 아파트로 이룬 것이었네요.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영원히 살 집이 아닌 투자용인데 위치 선정을 참 잘했습니다. 몇 년만에 집값이 거의 배로 뛰었답니다. 허허벌판에 위치한 아파트인데도. 최근, 동생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삼성에서 3백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때문이라네요. 이에 용인시도 그 일대에 228만m²에 1만6000 가구가 들어서는 반도체 특화 도시를 조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동생 아파트는 대박이 터진 거지요. 그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이미 동생은 부자인데 더 부자가 되겠네요. 예전 같았으면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큰 돈을 번 동생을 부러워했겠지요. 심술도 나고 배도 아팠을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을 가진 나는 그냥 멀거니 서서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이종사촌 동생집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푸른 자연이 아닌, 삭막하고 무거운 시멘트 건물을 매일 마주해야 할 집주인이 딱했습니다만 정작 주인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요. 그들에겐 창밖 풍경보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사실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