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하면 일단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고향에서 볼일을 다 본 후 출국일을 하루나 이틀 남기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서울에서는 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에 머뭅니다. 서울지리도 잘 모르고 나다니는 것을 싫어하기에 사촌, 친구들을 호텔로 불러들여 만납니다.

몇 번 썼지만 서울에서 나를 꼭 찾아주는 친구가 몇 있습니다. 그중 무당친구, 미연이, 창기는 다같이 만납니다. 매번 우리 넷은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회포를 풉니다. 호텔로 돌아와 늦게까지 수다를 떱니다. 재작년인가. 그날도 우리 넷은 자리를 옮겨가며 실컷 먹고 놀았습니다. 밤이 깊어 창기는 떠나고 미연이도 떠나고 무당친구와 같이 밀린 이야기를 하다가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 친구가 이른 아침부터 뭘 먹고 있습니다. 실눈을 뜨고 보니 크림빵입니다. 창기가 우릴 만나러 오는 길에 제과점 앞을 지나다 맛있어 보여서 샀다는. 나는 그 빵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친구는 새벽 댓바람부터 그걸 뜯어 먹고 있어요. 내가 일어난 것을 보더니 친구가 한 조각을 뚝 떼서 내미는데 구름같이 가벼운 빵의 속살 속으로 하얀 크림이 실하게 차 있는 것이 보통 먹음직스러운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양했어요. 간밤에 자그마치 3차까지하며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었는데 아침부터 무슨 빵을. 그런데 세상에, 친구는 그 빵 한 봉지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 치웁니다.

호텔 체크 아웃은 12시.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시간이 남아서 친구와 호텔 밖으로 나갔지요. 머리도 자르고 쇼핑도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구경을 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의 버스정거장 앞에 분식집이 있습니다. 길 쪽으로 내놓은 네모진 판에 걸쭉하고 벌건 양념장에 칠갑을 한 떡볶이가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친구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떡볶이를 좀 사잡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납니다. 그러나 쉴새 없이 다니는 차의 분진과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먼지와 이물질들이 앉았을, 그리고 벌건 색깔이 별로 내키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친구는 떡볶이와 만두를 삽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비닐봉지를 펼치고 먹기 시작하는 친구. 두어시간 전에 빵 한 봉지를 다 해치우고 다시 그렇게 맹렬한 식욕이 생기는 그녀가 부러웠습니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빈 속이다가 (전날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아서)비행기를 탄 후에야 기내식을 첫 끼니로 먹었습니다.

동네에 ‘야매’로 머리 파마를 해주던 여자가 있습니다.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김치도 해서 팔고 바느질도 하고 머리파마도 하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는 부지런한 여자입니다. 정식으로 배운 기술이 아니라 솜씨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늘 그녀한테 머리를 맡깁니다. 그 여자는 일이 밀려 눈코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않으면 손님들에게 냉면이나 부침개, 우동 등을 해주기도 합니다.

어느날 오전, 머리를 하러 갔습니다. 머리를 마친 후에 칼국수를 해주겠다기에 물론 아침을 굶고 갔지요. 머리를 말고 있는데 한 할매가 들어왔습니다. 이웃에 사는, 글에 몇 번 쓴 적 있는 할매. 칼국수 얻어 먹으러 왔다는데 빈손이 아니네요. 코스코에서 파는 대형 피자판이 들려 있어요. 아아니, 곧 칼국수를 먹을 건데 웬 피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할매가 대답합니다. 피자도 먹고 칼국수도 먹으면 되지. 머리를 말다말고 우리는 둘러 앉아 그 피자 한 판을 다 먹었습니다.

머리를 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나를 둘이 말립니다. 칼국수 먹고 가라고. 잔뜩 먹은 피자로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칼국수 들어갈 자리가 어디 있어요. 그냥 일어나 나왔습니다. 다음날 물어보니 나 떠난 후 둘은 계획대로 칼국수를 끓여먹었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물욕, 성욕,식욕 등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들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그 중 식욕이 제일 먼저 준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 우리 아버지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적당히 차면 반드시 숟가락을 놓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딱 한 숟가락의 밥을, 한 번만 후루룩 들이키면 될 국을 그냥 남깁니다. 버릴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어서 엄마가 많이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아버지는 딱 세 끼 밥만 먹었지 중간에 과자나 고구마, 옥수수, 떡 등 간식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어요. 아, 술이야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할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마셨지만.

나도 한 먹성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라면 두 개가 적어서 밥을 말을 만큼 식욕이 왕성했었지요. 이십대 때 잠깐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딱 끼니만 찾아 먹어요. 하루에 두 끼. 끼니 중간에 입이 궁금해 본 적이 없으니 군것질을 일절 안 할 뿐더러 평소에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있다해도 배가 부르다 싶으면 그걸로 끝. 식탐이 없어 과식을 하지 않아요. 이날 이때껏 야식이란 걸 입에 대 본 적도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걸로 푼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같은 경우는 오히려 입맛이 더 떨어지는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살면서 소화가 안 되거나 배탈이 나서 고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암(癌)이란 한자엔 입 구(口)자가 세 개나 있습니다. 입에 세 개이니 얼마나 많이 먹을까요. 그러니까 모든 암은 지나치게 많은 영양분을 섭취해서 걸리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요리법이 개발된 후 자기 적정량의 두 배, 세 배의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은 외식의 천국입니다. 미국이라면 듣도 보도 못한 맛있는 음식을 싸고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지요. 새벽 두 시에도 튀긴 닭을, 떡볶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그렇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합니다. 한국의 30대 남성 두 명 중 한 명, 여성은 네 명 중 한 명은 비만이며 20대 고혈압, 당뇨병 진료환자는 10년새 각각 1.8배, 2.2 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통풍,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성인병들이 다 많이 먹어서 생긴 병들이라고 하지요. 췌장암도 알고보면 기름진 음식을 자주 과식해서 생기는 병이랍니다. ‘먹방’이란 프로그램의 시초도 한국이라고 하던데 언제부터 먹는 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는지 참 개탄스럽습니다. 맛의 음미와 영양의 섭취와 생명부지라는 먹는 일의 숭고한 목적은 온 데 간데 없이 무조건 꾸역꾸역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넣는 행위 뿐인 먹방. 정말로 혐오스럽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형용량이 문제입니다. 양동이만한 데 담겨 나오는 청량음료, 일 인분을 시켜도 서너사람이 먹어도 남을 만큼으로 넘치게 나오는 음식들. 그렇게 배터지게 먹으니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하지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이어트 시장은 해가 갈수록 극대화 된다고 합니다. 실컷 먹고 뒤룩뒤룩 살찌고 그 살을 빼기 위해서 또 시간과 땀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현대인들.

새해입니다. 사람들의 새해 결심으로 다이어트가 항상 1순위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요. 우리는 다이어트보다 좀 색다른 결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많이 먹고 다이어트를 하기보다 좀 적게 먹는 결심을. 지금까지 우리가 먹던 양의 3분의 2만 먹는 결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