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천 공항의 입국심사 부스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표지판이 생겼습니다. 한글로 된 표지판입니다. ‘공항직원한테 고함지르지 말라. 폭력행위를 하지 말라. 직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고문입니다. 외국인들이 그 문구의 뜻을 알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미국 그 어느 공항에도 그런 표지판을 세워 놓은 곳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요. 재미있게도 그 표지판은요. 한국의 곳곳에 있었어요. 카페에도 있었고 식당에도 (보통 주인이 없고 직원들로만 돌아가는 대형 업소들)있었고 일본 유학 중인 동생이 필요로 하는 서류를 떼러 올케와 같이 갔던 구청에도 그런 비슷한 표지판이 세워진 걸 보았습니다. 공항 직원들, 식당 종업원들, 공무원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기본 예의입니다. 그들이 세운 규칙을 지키고 지시를 따르는 것 또한 기본 상식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당연한 것을 꼭 글로 써서 ‘친절하게’ 알려 줘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친절한 나라입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나라입니다. 전 국민을 ‘유치원생화’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치는 나라입니다. 사사건건 며느리의 말과 행동에 브레이크 걸고 통제하려는 시어머니 같이. 그중 하나가 한국 공중 화장실 종이타올함에 붙어 있는 글귀입니다. 없어도 될, 미국에서라면 구경도 못할. ‘손 닦는 용도로만 쓸 것이며 한 장만 써라’는 글귀. 상황에 따라 한 장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세 장으로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손을 닦을 수도 있고 얼굴을 닦을 수도 있고 다리를 닦을 수도 있지 왜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친절을 떨며 간섭하는지 모르겠어요.

용인의 이종동생 집에서 잔 다음 날 새벽에 나를 깨운 것은 한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몇 분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는 목소리. 부엌 쪽에서 나고 있었어요. 내가 잔 방이 부엌 바로 옆에 있어서.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가보니 동생이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소고기 무국을 끓이고 시금치를 무치고 어묵을 볶고 계란을 찌고. 백억대 부자면서도 직장에 다니는 동생이 출근하기 전에 우리들 아침을 먹이려고 준비중이었나 봐요. 내가 들은 소리는 가스레인지에서 나고 있었어요. 가스불을 켜고 끌 때마다 꺼졌습니다. 켜졌습니다라는 말이 새어나오는 겁니다. 참 신기하더군요. 가스레인지가 말을 하다니.

신기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엌 가전제품이 모두 앞다투어 말을 합니다. 정수기는 ‘급수를 시작합니다’ ’온수입니다‘라는 목소리로 친절을 베풀고요. 압력밥솥도 가만 있지 않습니다. 쉬익쉬익 김을 뿜어내던 밥통이 ‘취사가 끝났습니다’라고 주부의 주의를 환기시켜 줍니다. 이어 ‘밥통 두껑을 열어서 주걱으로 밥을 골고루 섞어주세요’라고 지시를 내리더니 ‘밥을 다 섞었으면 이제 맛있게 드세요’하고 인사까지 해 줍니다. 밥통을 여니까 열렸습니다. 닫을 땐 닫혔습니다는 물론이고요. 정말로 친절한 밥통.

아침을 먹고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레베이터 역시 친절합니다. 문이 열립니다. 닫힙니다. 내려갑니다를 쉬임없이 읊어대고요. 엘레베이터가 설 때마다 5층입니다. 2층입니다. 1층입니다라고 층수를 꼬박꼬박 알려줍니다.

동생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부산으로 출발했는데 출발한 지 1 0분도 안 되어 나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습니다. 친구남편도 초행길이라 네비게이션을 켜서 안내를 받아야 했는데 세상에, 네비게이션이 잠시도 가만 있지를 않는 겁니다. 운전자의 판단과 자율에 맡기지 않고 일일이, 그야말로 5분마다 한 번씩 지시를 하고 주의를 줘요. 오른쪽입니다. 왼쪽입니다. 몇 미터 근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몇 미터 앞은 과속, 추월 금지 구역입니다. 몇 미터 앞에 학교가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오르막 길입니다. 내리막 길입니다…

고속도로를 타면 입을 다물까 했더니 마찬가지입니다. 추월하지 말아라. 졸음운전 하지 말아라. 사고 다발 지역이니 주의해라. 동물 출현 지역이니 전방을 잘 살펴라. 급 커브길이니 속도를 줄여라 등등. 용인에서 부산까지 거의 다섯 시간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네비게이션. 정말이지 돌 뻔했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만나면 그냥 인사정도만 했을 뿐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던 친구남편이었기 망정이지 친구나 동생 차였다면 제발 그 요망한 여자의 입을 좀 다물게 하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그렇게 자상하게 친절하게 손에 쥐어주듯 안내를 해주는데도 교통사고는 왜 항상 한국이 세계 1위일까요. 미국에서도 너나 할 것없이 네비게이션을 쓰지만 한국처럼 과하다 싶을 만큼 하나하나 가르치지 않잖아요. 알아서, 운전자들이 다 알아서 다닙니다. 표지판만 있으면요. 위법을 하다가 적발되어도 내 책임입니다.

그리고 또 부산까지 내려가면서 본 생경스런 것 하나. 그때가 추석을 며칠 앞 둔 시기였는데요. 곳곳에 플래카드가 처져있었어요. 업소 개업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아무개를 엄벌하라, 처단하라, 구속하라 등등의 정부와 정치인의 행태를 촉구하고 규탄하는 과격한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 옆에 어김없이 붙어 있는. ‘한가위 잘 보내세요. 국회의원 아무개 ’ ‘고향 잘 다녀 오십시오. 국회의원 아무개’라고 인사말을 적은 플래카드. 용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적어도 수십개는 봤을 겁니다. 정말로 친절한 한국입니다. 미국에서 수십년을 넘게 살았지만 정치인들이 추수감사절 잘 보내라고 인사하는 플래카드는 한 장도 못 봤거든요.

고향에 도착한 며칠 후 친구들과 절에 놀러 갔습니다. 절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편하지 않은 신발을 신었음에도 문제없이 절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산 입구에서 절까지 전부 나무와 돌과 쇠 철판으로 길을 잘 만들어 놓아서입니다. 부주의해서 넘어진다 해도 큰 부상을 입지 않게끔 얼마나 매끈하고 편리하게 잘 다듬어놨는지. 좀 가파르다 싶은 곳에는 떨어지지 않게 어김없이 쇠줄을 쳐놓았고요. 너무너무 친절하지 않습니까. 미국에는 천길 낭떠러지인 곳에도 조심하라는 경고판 하나 없지요. 네 목숨이니 각자 알아서 하라, 이겁니다. 불친절한 미국.

절 경내에 들어서자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더군요. 째재잭 짹짹 새 소리도 들립니다. 새 소리치고는 너무 선명하고 크게 들렸습니다. 어쨌든 참 좋구나. 절에 온 기분이 나네! 내가 감탄을 하자 옆에서 친구가 말합니다. 승려들이 직접 읊는 독경이 아니라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새 소리도 진짜가 아니라 녹음기에서 나오고 있는 거라네요. 세상에. 녹음기까지 틀어가며 절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려 애쓰는 한국의 절이라니. 바람소리, 물소리 등 그냥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할 것을.

서울로 올라가면서 천안에 들러 한 친구를 만나려고 했는데 추석이라 기차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줄 몇가지 선물들을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노안 때문에 전표를 쓰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비치해 놓은 돋보기들을 보았거든요. 우와, 정말로 한국은 친절하구나!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써서 배려해주는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있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헬 조선이니 어쩌니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한국 사람들. 미국에 와서 한 달만 살아보면 그런 말이 쑥 들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