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도 다 그런 편이지만 외모에 있어 신은 내게 참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부익부빈익빈이라는 말이 딱 맞았어요. 내 주위에도 보면 키가 보기 좋게 늘씬한 사람은 얼굴마저 수려하고 몸매까지 뛰어나더라고요. 키가 작더라도 팔다리는 길어서 옷을 입어놓으면 태가 나는 데다 얼굴이 귀엽거나 다른 큰 장점이 있는 사람도 있고 이목구비는 좀 뭣하지만 피부결이 백옥같이 고와서 귀티가 줄줄 나는 사람도 있고요.

그에 비해 나같은 사람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단 한 군데 내세울 게 없었어요. 자기 외모에 만족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만은 나야말로 1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기면 0, 아니, 마이너스 0일 정도입니다. 일단 키가 작아요. 1미터 50센티를 겨우 넘을랑 말랑. 머리는 또 ‘모여라 꿈동산’입니다. 게다가 통뼈라 허리도 굵고 목도 굵어요. 팔과 다리는 짤퉁하고. 뼈가 굵으니 뭘 입어놔도 부해 보여요. 미국 사이즈 ‘S’를 입는데 사람들이 ‘M’인 줄 알 정도입니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코스모스같이 갸냘프고 청초한 여성’은 먼 꿈나라의 이야기. 커야할 곳은 작고 작아야 할 곳은 크고. 하여튼 총체적 난국입니다.

얼굴은 더 처참합니다. 완전 사각형에다 광대뼈까지 있고 입은 하마같이 큽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입은 크지만 육감적인데 나는 돌출형인데다 두텁기만 해서 육감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피부나 좋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얼굴이 당겨본 적 없는 지성. 늘 기름으로 번들거리니 여드름도 많이 났었고요. 운동한다고 땡볕에 나가 다녀서 기미까지 잔뜩 꼈더랬습니다.

여지껏 살면서 나처럼 형편없는 생김새를 가진 여자를 본 적 없다면 말 다했지요.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칭찬이라니요. 한국사람들은 대놓고 면박주기를 잘 하지요. 어찌 그리 못생겼냐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백 번? 천 번? 그래서 외모 가꾸기는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시쳇말로 호박에 줄 그어봤자 수박 안 되니까 그냥저냥 생긴대로 살자 주의였지요.

몇 년 전인가. 한국의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습니다. 내가 미국 온 이후 만나지 못한 고향친구 여러명의 모습이 거기 있었어요. 어머나. 얼굴들이 모두 다리미로 쫘악 편 것 같습니다. 주름 한 줄 없어요. 어쩌면 그리들 희고 고운지. 확대해서 봤는데 점 하나, 티 하나 없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나보다 열살은 모두 어려보입니다. 이글이글 대지를 태울 듯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 선블럭도 안 바르고 뛰고 걷고 자전거를 타러 다닌 나는 인간의 얼굴이 아닌데 말입니다.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못생겼다한들 여자는 여자인데 너무 내 얼굴을 방치했다는 자성을 했어요. 돈을 좀 써야할 것 같았어요. 그러나 마음 뿐, 원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그게 금방 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재작년, 직장일을 그만 둔 후부터 한 지인의 추천으로 얼굴 마사지 기계(전류로 자극을 줘서 피부를 곱고 탱탱하게 한다나 어쩐다나)를 구입했습니다. 얼굴을 가꾸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시간이 너무 넘쳐나서.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소비해야 될 것 같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제 한 번 밝힌 적 있지만 나는 굉장히 강한 집념과 끈기가 있습니다. 뭘 한 번 시작하면 중도에 그만 두는 법이 없어요. 그 기계를 구입한 이후부터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매일 10분 씩. 한 달, 두 달, 1년. 올 3월로 2년 째가 됩니다.

음, 화장품은 지금까지 코스코나 월마트에서 파는 10불을 넘지 않는 저렴한 것을 그대로 썼습니다. 타고나기를 무수리 신분인 나는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 한국의 친구로부터 크림 하나를 선물받았는데 이게 참 물건이더군요. 얼굴색이 달라졌습니다. 다시 사려고 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해요. 포기하고 다른 것을 사기위해 서치를 시작했는데 기초화장품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남의 의견을 듣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존에서 보습, 영양보충, 주름개선, 미백 효과가 가장 좋았다는 높은 별점 위주로 골라서 구입했지요. 그래봤자, 2,30불선에서. 한 번 살 때 서너개씩 사서는 듬뿍듬뿍 퍼발랐습니다. 유튜브에 나온 피부과 의사의 ‘괜히 비싼 것 사서 벌벌 떨며 아끼지 말고 싼 것으로 많이 바르라’는 조언을 따랐지요.

작년 봄, 한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희주를 보러 갔습니다. 보통은 친구들이 나를 보러 오지만 희주는 큰 한우식당을 운영하기에 늘 바쁩니다. 식당과 더불어 정육점도 운영하고요, 식당에서 쓰는 파, 고추, 배추 등 채소들을 직접 농사를 짓기에 스물 네 시간 바쁩니다. 희주를 보러갈 때는 항상 올케나 동생을 대동합니다. 희주가 대중교통이 원할하지 않은 곳에 살기에. 그날도 나는 올케와 함께였습니다.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고 밥을 먹고갔는데도 불구하고(눈코 뜰 새없이 바쁜 희주를 배려해 늘 배를 먼저 채우고 갑니다)죽어도 고기를 좀 먹여보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희주의 성화에 한 상 차려서 먹고 손님을 받는 틈틈이 우리 테이블로 온 희주랑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희주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저히 궁금해서 아침이 될 때까지 못참겠다면서. 엊저녁에는 올케가 옆에 있어서 물어보지 못했다면서. 다른 친구들한테 소문 안 낼 테니까 자기한테만 솔직하게 말하라면서. 그러면서 조심스레 묻는 말. 계숙이, 니 성형수술 했나?

희주가 말했습니다. 지난 번에 봤을 때보다 미묘하게 뭐가 달라진 것 같다고. 양쪽 볼때기의 심술보가 올라 붙은 것 같고 눈 주위의 주름도 옅어진 것 같으며 턱도 날렵해진 것 같다고. 그래서 거상이라든지 무슨 수술을 한 것 같다고. 하다못해 보톡스라도 맞은 것 아니냐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희주가 옆에 있었으면 진짜 그렇게 내가 몰라보게 예뻐지고 젊어졌냐면서 와락 껴안았을 겁니다. 진짜 공들인 보람이 있네요. 아닌게 아니라 최근에는 못생겼다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희주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의 친구들로부터는 외모에 대한 찬사를 듣습니다. 미국의 지인들로부터는 가면 갈수록 인상이 편안하고 부드럽게 변해간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요.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직장일에서 해방되니까 스트레스도 없어졌고요.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니까 예전처럼 속 끓일 일도 없어 잠을 잘 잡니다. 만사가 편하니까 인상도 그에 따라 변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을 때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외모에 대한 칭찬을 이제야 듣게 된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내 나이가 예순입니다. 이 나이에 예뻐졌으면 얼마나 예뻐졌을 것이며 젊어졌으면 얼마나 젊어졌겠어요.

인구 10만이 안 되는 고향에는 아직도 5일마다 한 번 장이 섭니다. 친구와의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날이 마침 장날이어서 동생집에서 40분 거리를 슬슬 걸어 구경을 나갔습니다. 시골이라 하나 독일제 최신 고급차들을 길에서 자주 보는 발전된 곳인데 장날은 여전히 나 어릴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단돈 5천원에 팔리는 불쌍한 강아지들, 다 판다해도 만원어치도 안 될 푸성귀를 놓고 앉아있는 할매들, 낫과 호미를 벼뤄주는 농기구 판매점. 울긋불긋한 싸구려 옷들을 파는 노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진들에 그대로 노출 된 음식들. 7, 80년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네요.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도저히 걸을 수도 없는 시장 안을 이리저리 기웃대던 나는 금방 눈시울이 뜨끈해지고 말았습니다. 내 여동생들을 수도 없이 만난 때문입니다. 동남 아시아에서, 그러니까 몽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농촌 총각들과 결혼해 이주해 온 여성들. 넓대대한 얼굴형에 햇빛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피부, 주먹만한 광대뼈, 두껍고 커다란 입술, 넓은 어깨와 굵은 뼈대의 다부진 체격들을 가진. 내가 거기 섞여 있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그녀들과 나, 우리들의 외모는 피를 나눈 자매들처럼 너무나 흡사했기에요.


한국사람들은 두부모처럼 획일적인 어떤 틀을 딱 정해놓고 거기에 어긋나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지요. 나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못생겼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던 것은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광대없이 매끈한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에 흰 피부에 앵두같이 작은 입술이 아닌, 완전 반대의 얼굴이었거든요. 그랬습니다. 여기 지인들도 나를 처음 봤을 때 한국사람이 아닌 줄 알았대요. 그래서 영어로 말을 걸었던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 사람들이 내게 더 이상 못생겼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남 아시아 여성들을 매일 봄으로서 나같은 외모가 눈에 익숙해졌기 때문. 그럼요. 타고난 외모가 가꾼다고, 인상이 변한다고 어디 가나요. 나는 여전히 못생겼습니다.



- 얼굴 반을 가려놓으면 나름 봐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