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 줄 알지만 이건 뭐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왜 이렇게 내가 세운 계획들은 꼬이기만 하는지. 수술을 앞두고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서울로 올라가려는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무당친구(이름이 태규입니다)얼굴을 더 보고 아울러 태규가 소개해 준 한의원에 가서 침도 좀 더 맞으려던 계획이 무참하게. 추석이 끼어서 기차표가 아예 없는 겁니다. 친구 얼굴은 고사하고, 침은 고사하고, 이거 예약해 놓은 수술이나 제대로 하겠나, 아니 미국에 제대로 돌아가겠나 얼마나 조바심을 냈던지요. 얼마나 안절부절했던지요. 수술 날짜를 연기해 놓고 동생, 올케,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서 시시각각으로 철도청 사이트를 들어가 보기를 며칠. 누가 취소한 표 한 장을 간신히 구했습니다. 출국 이틀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술 하루 전에.

서울로 올라가서 병원에서 5분 거리의 호텔에서 하루 묵었는데 잠이 올리가 없지요. 뜬 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수술 당일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걱정이 태산이었거든요. 수술 다음날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할 상황이 되었잖아요. 몇 만 피트 공중에서 수술자리는 무사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무지막지하게 붓지는 않을지, 피는 금방 그칠지, 수술자리가 터지는 불상사는 없을지가.

다음 날. 비 뿌리고 흐리던 날씨가 쾌청했습니다. 일단 던져진 주사위. 운명에 맡기자, 하고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태규의 딸을 불러 병원에 동행했습니다. 마취를 해야 한다는데 전신마취인지 부분마취인지 정보가 없었습니다. 전신마취인 경우,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로비와 웨이팅룸 등 병원 전체는 아주 깨끗하고 쾌적했어요. 신촌의 아주 복잡한 지하철 역 가까이, 사거리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건물 5층이라 그런지 깊은 산 속의 절간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했고. 추석 직후라 그런지 환자는 나 뿐이었습니다.

현찰로 수술비를 지불했는데 220만원. 카드로 지불하면 조금 더 비싸고 세금환급을 받을 수 있는 영수증도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창피한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성형에 관해 인터넷 서치를 하면서 자주 보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해외교포들한테는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으니 무조건 수술비를 깎으라’는. 그래서 딴에는 바가지 안 쓰려고 마구 수술비를 깎으려고 덤볐는데요. 나의 애원과 읍소와 협박에도 이 병원,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지일관으로 처음의 금액을 고집합니다. 1전도 안 깎아 줍니다. 그래서 신뢰가 더 생겼습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수술비를 들쭉날쭉 받는 병원이라면 좀 그렇겠지요?

수술비 할인이 없는 대신 무료로 보톡스 주사를 눈가랑 이마 등에 놔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기겁을 하고 싫다고 했지요. 천장까지 펄쩍 뛰면서 거부하니까 의사가 막 웃더군요. 보톡스로 부작용 생긴 사람 봤냐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실로 이동되기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흥분도, 걱정도 없었어요. 딴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그저 편안하고 담담했습니다. 생전 처음해 보는 수술인데도. 즉홍적인 결정이 아니라 내가 받을 수술에 대한 충분한 공부를 하고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라 그랬지 싶습니다. 그리고 수술 하룻만에 비행기를 타게 된 것도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편했습니다.

조금후 수술실로 이동했어요. 영화에서나 보던 둥그런 전등이 천정에 설치돼 있고 온갖 복잡한 기구와 기계들이 있는. 간호사가 내 양손을 결박(?)했습니다. 혹시나 수술 도중 움직이거나 몸부림 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랍니다. 아, 이제 진짜구나하는 실감이 들더군요. 수술대에 눕기 전에 몸무게를 쟀는데 몸무게에 맞춰 마취제(프로포폴)용량을 투약하기 때문이라고 간호사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프로포폴이란 말에 ‘음, 그러면 제가 영화배우 유아인처럼 되는 건가요?’하고 농담을 한 것 같았는데 세상에, 눈을 떠보니 벌써 수술이 끝나 있었습니다. 수면마취는 생전 처음이었는데 뭐라 그럴까, 꿈도 없이 아주 푹 잘 자고 일어난 느낌이 들더군요. 유아인을 비롯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유명인들이 프로포폴에 중독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회복실로 옮겨져서 거울을 보니 입술 위에 거즈가 덮여져 있습니다. 2주 동안 그 거즈를 부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아물 때까지. 거즈 위를 만져보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도 아프지를 않아요. 피도 전혀 비치지 않았습니다. 이거, 수술을 하긴 했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또한 정신도 말짱했습니다. 마취에서 금방 깼는데도 몽롱하거나 어지럽지도 않았어요. 오, 얼굴 전체에 붉은 점 같은 게 다다닥 뿌려져 있는 것 같길래 물어보니 레이저로 점을 다 빼줬다고 하네요. 보톡스는 싫다고 하니까 대신 점을 빼준 거지요. 서비스로 말입니다. 고맙기도 해라!

태규 딸과 농담하고 시시덕거리면서 회복실에서 조금 시간을 보낸 후 카운터로 갔더니 직원이 연고와 함께 진통제, 항생제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처방전도 줬습니다. 몇 가지 주의사항도 줬는데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분간 수술 부위에 물 닿게 하지 말라. 2주 후 거즈를 뗀 후 부위가 당길 수 있으니 그때 원고를 발라라 등등. 수술비 깎아달라고 진상을 피운 게 미안해서 마구 사양하는 직원에게 점심값을 쥐어준 후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거리엔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입술 위에는 커다란 거즈를 부친 상태였는데 한국에는 성형수술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얼마나 상쾌하고 가뿐하던지요. 벼르고 벼르던 숙원 하나를 순조롭고 쉽게 해치운 느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렇듯 간단하고 쉬운 수술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랬는데 그날 저녁. 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태규의 권유에 의해 전신 마사지 업소를 간 겁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잘 한다는 마사지 업소랍니다. 한 시간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나와 거울을 봤는데 아이고, 이를 어째! 그동안 깨끗하고 멀쩡하던 거즈에 거무죽죽한 피가 잔뜩 배어나와 있는 겁니다. 상의를 탈의한 후 한 시간 동안 엎드려 있었어요. 밑이 뚫린 동그란 베개를 얼굴부분에 대고요. 수술 부위에 닿지 않게 애썼는데도 엎드려 있다보니 어쩔수 없이 닿았던 가봐요. 또한 얼굴을 숙이고 있었기에 밑으로 피가 쏠린 겁니다. 늘 덤벙거리고 조심성 없는 나. 땅을 치며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

다음날, 글에 쓴대로 대형견 두 마리를 이동봉사해야 했기에 공항에 서너시간 일찍 나갔습니다. 공항으로 가면서도 머리를 가득 채우는 불안이 있었으니, 입술 위를 거의 다 가리는 거즈를 부착하고도 무사하게 출국심사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그 걱정은 기우에 그쳤어요. 한국으로 수술받으러 원정온 사람들을 하도 봐서인지 직원은 그저 마스크를 내려보라는 말만 하고 흘낏 쳐다보더니 무사통과! 그랬는데 복병은 다른 데 숨어 있었네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열흘을 죽도록 앓았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겁니다. 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미국에 도착해 집에 올 때까지도 줄곧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코로나는 정말로 지독했습니다. 온몸에 오한이 들고 깨질 듯한 두통에 기침에 콧물에. 나를 환장하게 괴롭힌 것은 쉴새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이었습니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 흐르는 콧물. 마치 막아놓았던 봇물이 터진 것같았어요. 거즈 위로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훔쳐내기를 사흘째 하던 날,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거즈를 떼내고 말았습니다. 병원측에서 2주 동안 반드시 부착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던.

그런데요. 생각외로 괜찮아요. 목욕탕 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고 살펴봤는데 진물도, 피도 없었어요. 생살을 깎아낸 만큼 시뻘겋게 착색은 되어 있었지만 굳이 다시 거즈를 부쳐도 되지 않을 만큼 다 아물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주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랑처럼 죽죽 줄이 파여있던 부분이 매끈했습니다!

내가 받은 수술은 찢고 들어 올리고 꼬매고 잘라내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주름진 부분에 임의적으로 약품을 채우는 방식도 아니었고요. 그러니까 주름이 패인 살을 특수기계를 이용하여 갈아내는 수술이었습니다. 깎여져 나간 부분에는 조금씩 새 살이 돋겠지요. 그래서 영구적이라고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수술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영구적’이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보톡스를 맞지 않으려는 이유가 효과가 일시적이라는데 있었거든요. 또한 그 병원을 선택한 이유가 수술한 후 효과가 미미할 시 무료로 재수술을 해주겠다고 사이트에 명시해 놓았기 때문이었어요. 책임지고 재수술을 약속하는 병원이 흔치 않았거든요. 신선했습니다. 상담 받을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살갑고 친절하게 굴다가 수술후 문제가 생기면 돌변해서는 ‘배 째라’하는 병원이 엄청 많다는 후기를 하도 읽어서 한국의 성형외과에 대한 불신이 생기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자, 그 후 넉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고 물론 통증도 없었습니다. 불그스레하던 수술 자리도 지금은 완전히 원래 내 피부 색깔로 돌아왔습니다. 병원 측에선 두 달이 지나야 된다고 했는데 나는 시간이 좀 더 걸렸어요. 마사지숍에서 1시간을 엎드려 있으며 수술한 곳과 베개가 마찰되면서 압박이 있었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족하냐고요? 예.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로 꼽을 만큼.




-수술 바로 다음 날 공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는 강아지들의 출국 수속을 밟던 중 유기견 단체 봉사자가 기념으로 찍어준 사진입니다.

-지난 번 글을 읽은 여러 독자님들이 쪽지로 병원 정보를 물어오셨는데요. 신촌에 위치한 ‘연세자연미 성형외과’입니다. 그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술 전후 사진이랑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